카페 시월은 커피 향 속 여행이자 상상력
문학이라는 잃어버린 시간을 붙들고 있는 곳
한쪽 편은 하재영 시인의 창작실

 

시를 잊어가는 세상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 줄의 시를 선택하는 일은 아웃사이더로 남겠다는 내면의 저항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보겠다는 서글픈 목표인지도 모른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외로움을 기꺼이 생활의 동반자로 곁에 두겠다는 뜻이다. 시를 통해 감동을 전달하는 일은 그들이 진정한 시인으로 살아냈을 때만 가능하다. 언어의 장난질로는 티끌만 한 공감도 얻어내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눈 밝은 독자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책이 외면당하고 시가 터부시되는 사회에서 누구나 똑같이 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 그렇게 똑같은 삶을 거부한 하재영(67·사진) 시인이 시를 위한 공유 공간을 만들었다.

청주시 강내면에 위치한 북카페 시월이 바로 그곳이다. 2년 전 청주 외곽에 문을 연 시월은 한쪽 편에 하 시인의 창작실도 겸하고 있다.

 

 

문학의 향기를 옮겨 놓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페 시월은 상상력이다. 시월은 커피 향 속의 여행이다. 카페 시월은 이웃이다.’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곽재구, 황동규, 나태주, 유성종 시인 등의 육필원고가 전시돼 있다. 19467월 발행된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 브레히트의 작품 살아남은 자의 슬픔’,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등 80년대 읽었던 빛바랜 시집들이 보인다.

카페 시월은 잃어버린 시간을 고스란히 붙들고 있었다. 생활에 급급해 놓치고 살았던 문학의 향기를 옮겨놓은 공간이었다.

하재영 시인은 시를 생각하고 시인을 생각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무섭도록 빠르게 디지털화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시월은 10월이란 의미도 있지만 시가 있는 월곡리란 뜻이 더 강하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자발적 타향살이

청원권 강외면 봉산리가 고향인 하 시인은 청주교대를 졸업하고 1979년 보은 관기초에서 첫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자발적으로 아는 이 하나 없는 지역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외로움과 직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87년 포항제철서초로 이직한 후 2020년 그곳에서 41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타향생활은 그가 선택한 문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는 교사로 근무하며 1988충청일보신춘문예에 동화, 1989아동문예작품상에 동시, 1990매일신문신춘문예에 시, 1992년 계몽사 아동문학상에 장편 소년소설이 당선됐다. 하 시인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타향에서 문학인으로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펼쳐나갔다. 저서 장편소년소설 <할아버지의 비밀>, 동화집 <안경 낀 향나무>, 시집<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바다는 넓은 귀를 가졌다>, <낯선 여행지의 몸무게>, 산문집 <윤슬세상>이 그 치열함의 결과물이다.

 

 

삶의 근력을 만들어 나가는 곳

퇴임 후 그는 고향 청주로 돌아와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 20204대가 함께 사는 건물을 짓고 1층에 창작실 겸 시의 공유 공간인 북카페를 열었다. 문학을 하면서 그동안 수집한 3만여 권의 책은 건물 뒤편 서고에 보관했다.

하재영 시인에게 책은 삶의 근력이다. 그는 청주 변두리 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근력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청주를 소재로 한 글을 써 내려갈 계획도 세웠다. 누구라도 찾아와 시를 얘기하며 생활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북카페 시월이 향유되길 그 무엇보다 희망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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