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로 살아온 최종식 목사의 마지막 설교
“45년 목화자의 길은 감사함 자체였다”

 

청산성신교회(옥천 청산면 교평리 소재) 최종식(86 사진) 목사의 마지막 설교가 진행됐다. 27일 주일 예배에 참석한 10명 남짓의 성도들은 최 목사의 마지막 설교에 고개를 끄덕였다. 8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진심을 다하고 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

최 목사의 마지막 설교는 섬김에 대한 교훈이었다. 그는 봉사와 섬김에는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다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섬김은 남들도 좋아하는 일 생색내는 일이 아닌 타인이 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것으로 스스로 낮은 자리에 임해 자발적으로 상대를 돕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에서 한 발짝 벗어나 내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섬기는 일에 나서는 일이 곧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설교를 마친 최 목사는 옥천에 온 후의 30년 목회 활동을 내려놓았다. 서울에서 한 목회 활동까지 하면 45년 목회자의 길이었다.

그는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성경 말씀을 전하고 싶지만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후두부 모세혈관이 막혀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열정을 다한 최 목사는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라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젊은 시절에 세상 딴 길로 가며 방황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 목회자로 살아온 45년이 온전히 감사였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41세에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45세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서 5년 동안 개척교회(연남장로교회)를 했다. 이후 장안동 경성장로교회 청빙 목사로 부임했다. 그가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영세민들을 위해 쌀과 연탄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는 인근 쌀집과 연탄가게에 돈을 미리 선납하고 교회 주보 한 장만 들고 오면 쌀과 연탄을 가져가도록 했다. 당시 이 지역은 영세민들이 유독 많아서 최소한의 배고픔과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의 배려였다. 또 서대문경찰서 유치장과 청송교도소 등을 돌며 지속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그가 충북 청산에 내려오게 된 것은 그의 아내(나을동 86)가 과로로 쓰러지면서 휴양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를 위해 서울에서의 목회 활동을 접고 청산면 교평리에 작은 교회를 직접 지었다. 10명이 넘지 않은 작은 개척교회였지만 1년에 500여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성탄절 전날 마을을 돌며 독거노인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소리 없이 이웃을 섬기는 그의 활동은 20년 넘도록 한결같이 이어졌다.

최 목사는 스스로 낮은 자리로 임해 섬기는 자로 살아온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섬김은 목사로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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