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옥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

 

배영옥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
배영옥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

올해 83세인 친정엄마는 우리를(칠남매) 키우실 때 큰소리로 야단치시거나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조용하고 과묵했다.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아버지 편이었다. 혹여 아버지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당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렇게 늘 인자하고 말이 없던 엄마가 달라졌다.

작년, 부모님 모시고 있는 남동생이 엄마에게 세탁기와 건조기를 새로 사드리겠다고 했다.

"건조기 있으면 빨래 안 널어도 되고, 세탁기도 바꾸고 엄마는 좋겠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은 의외였다.
싫다. 난 지금 쓰는 세탁기 그냥 쓸 거다. 새 거 필요 없다
왜냐고 묻는 딸에게 엄마는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도 못 꺼내게 했다.
새 세탁기가 새로운 기능이 많아서 휠씬 좋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엄마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는 새로운 기기의 작동법을 익히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엄마에게 이 세상은 온통 낯설었으리라.
낯선 곳에 가기 싫은데, 자꾸 가라고 부추기는 딸이 얼마나 미웠을까.
낯선 곳에 가기 싫은데 거기 가면 좋다고 막무가내로 떠다미는 딸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당신 속도 모르고. 지난달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왕벚꽃이 만발한 서산 문수사에 다녀왔다.
문수사의 벚꽃 터널이 걷기에 완만하고 아름다워서 친정 부모님께 문수사에 꽃놀이 가자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내가 내민 문수사 꽃 터널 앞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시더니 예쁘다며

꽃놀이 가자는 말씀에 많이 좋아하셨다.

엄마 내일 놀러가니까 옷도 예쁘게 입고 화장도 하셔야 돼요

아무거나 입으면 되지 무슨 예쁜 옷이냐, 화장도 귀찮다

엄마, 이쁜 옷 입고 화장해야 같이 가지

왜 그렇게 노인네한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냐. 귀찮게 하면 나는 안 간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너무 완강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뭐지?

꽃놀이 가던 날 엄마는 옷도 당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으셨고 화장은 안하셨다.

전에 같으면 나는 출발 시간 보다 일찍 친정에 도착해서 엄마 옷장을 열고 가장 화사하고 예쁜 옷을 골라 드렸을 거다. 그리고 화장은 물론 엄마 머리도 만져드렸을 거다. 그런데 엄마가 이런 모든 것을 거부하셨다. 엄마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싶다고.

가끔 엄마는 집안 일을 못하게 하는 내게 내가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자식들은 엄마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엄마의 자리를 점점 뺏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자녀와 소통하는 법은 책으로 찾아보고 배우는데 부모님과 소통하는 법은 모르고 그냥 살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제라도 엄마가 원하는 게 뭔지,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귀 기울이고 살펴야겠다.

엄마는 달라진 것이 아니다.

엄마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일방적으로 참아 온 것을 가족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젠 엄마의 생각을 표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를 응원할 것이다.

익숙한 것이 편해서 새로운 것을 거부해도 나는 엄마 편이 되어줄 것이다.

남은 여생 엄마가 더 행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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